수 백의 총 탄. 아마 그로 인해 몸무게가 늘어나도 이해가 갈 만한 지경이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구역질이 나진 않았다. 이 쯤되면 형태를 알아보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니까.
그저 커다랗고 붉은 쇠고기 하나가 비릿한 내음을 풍기며 떨어져 있는 것이다. 맛도 쇠고기일지 어떨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댓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약 3초 간 생각에 빠졌다. 3초라는 우습게도 구체적인 시간은 내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직선으로 시계가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침이 18도 돌아가는 시간 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머리가 좋으니까 내가 30초 동안 생각한 걸 단 3초면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3초의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당한가?"

무심코 내가 뱉은 이 말은, 일단 머리 속의 정상적인 회로를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나온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게 머리 좋은 그의 말을 이끌어 내는 결정적인 스위치가 되고 말았다.

"그런 건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지. 무언가를 했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의 예측 가능한 결과 중 가장 재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야."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간만에 그의 입에서 여러 마디의 단어가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어차피 이 도시는 그의 말대로 이런 형편없는 룰에 의해 돌아가는 건 사실이니까.
나는 그의 너머 시계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을 봐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오는 나의 버릇이다. 핸드폰을 맹신하는 멍청한 놈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행동이다.

"이제 그만 가지. 경찰이 올 때군, 그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얻을 만한 정보는 다 얻었다는 의미였다. 아니면 반대로 쓰레기 같은 정보 조차도 없다는 의미일 지도 모른다 - 이건 다분히 나의 생각이긴 하다.

멀리서 사이렌이 들릴 때 그와 나는 이미 300미터 이상 현장에서 멀리 걸어 나와 있었다.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있던 나는 습관적인 안도감을 느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 우리의 일은 일단 여기까지다. 이젠 들어가서 쉬면 되는 거야 - 그런 생각 쯤 하고 있을 무렵, 미리 대기하고 있던 회사의 차량이 우릴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쉴 틈도 없군."

그는 내 말에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절반도 못 피운 담배를 발로 지지는 내가 안쓰러운지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차를 타고 가면서 생각해봤다.
일단 뭐라고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쇠고기와 인간의 차이점에 대해' - 아니, 이건 내가 그 쇠고기가 되기에 적합할 것이다. 그것도 성질 더러운 보스의 손에 직접.
제목 만큼은 화려하게 가야겠지.

"에스티아 더 그린 아이(Estia The GREEN-EYE)의 최후. 어때?"
"좋을 대로."
"이봐, 댁도 작성해야 한다고. 좀 진지하게 고민 해 줘."
"좋다는 뜻이야. 너무 감상적인 것만 빼면."
"그래? 알았어. 좀 더 생각해 보지."


에스티아. 골치 아팠던 청부 암살범. 우리로써는 에스티아의 사망이 아주 좋은 사건이다. 그 끝이 좀 허무하고 불쌍하긴 하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우리 손에 죽지 않고 제 3자에 의해 죽었으니 우리는 그 죽음을 조롱하며 축배를 들면 그만이다.

결론적으로 영웅이 되어 봤자 겨우 회색의 빛에 먹힐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이 도시, '파이프 시티'에서는 말이지.
========================================

예전에 쓰다가 포기했던 글, 환각(Hallucination)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
그 당시 이 아이디어를 감당할 수 없던 나의 글 실력은 아직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아이디어가 알아서 현실에 맞게 다운 그레이드 되고 있어서 쓸 수 있는 단계가 될 것 같다.

지금 이 글은 그냥 손 가는 대로 썼을 뿐이다. 일단 연습 겸 써본 것이다. 때문에 스토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하나의 컨셉이라면 최근 내 글들의 유형 대로 주인공을 제외한 다수의 사람의 시점에서 1인칭으로 서술되는 형식이랄까나.

'나의 문화 이야기 >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 할루서네이션 컨셉 단편02  (0) 2007/04/21
무제  (4) 2006/06/30
무의(無意)  (0) 2006/05/25
언술사 이야기 OST?  (0) 2006/01/28